과학에 대한 고정관념 크게 바뀌어

[데일리비즈온 심재율 전문위원]어린 학생들에게 수십 년 동안 ‘과학자를 그려보라’고 요청했다. 수십 년 전에 거의 모든 어린이들은 과학자를 남자로 그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과학자=남자 공식은 크게 바뀌었다.

‘과학자를 그리다’(Draw-A-Scientist)라는 연구의 50년 치를 분석한 연구팀은 과학자를 남자와 연결시키는 고정관념이 크게 바뀌었다고 발표했다. 더 많은 여성들이 과학자가 되고, 텔레비전 쇼나 잡지 또는 다른 언론 매체에서 점점 더 많은 여성 과학자들이 등장하는 것과 관계가 깊다.

미국 노스웨스턴 심리학 박사과정인 데이비드 밀러(David Miller)는 “고정관념에 대한 이같은 변화를 보면 최근 여성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개발하고 있다”고 최근 ‘어린이 발달’ (Child Development)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자를 그리다 실험’(Draw-A-Scientist Test DAST)의 체계적이고 정량적인 첫 번째 분석이다. 유치원부터 12학년 사이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2만여 명이 참여한 78개 연구 결과를 모아 분석해서 얻은 결론이다.

 

어린아이가 그린 과학자의 모습 ⓒ Draw-a-Scientist study
 어린아이가 그린 과학자의 모습 ⓒ Draw-a-Scientist study

‘과학자를 그리다’의 기념비적인 첫 번째 연구는 1966년에서 1977년 사이에 진행됐다. 사회과학자인 데이비드 챔버스(David Chambers)는 캐나다와 미국의 4,807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과학자를 그려보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학생들은 주로 흰 가운을 입고 안경과 실험실 장비와 책을 든 남자과학자를 그렸다. “내가 발견했어!”라고 외치거나 “와우”라고 글을 적어 넣기도 했다.

과학자를 그려보라는 테스트는 사회과학에서 하나의 고전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수십 년 동안 여러 번에 걸쳐 되풀이해서 진행됐다.

최근에는 28%가  ‘여성과학자’ 그려 

그러나 이번에 논문을 발표한 데이비드 밀러가 1983년에 발표된 챔버스의 첫 번째 데이터를 들여다 보니 뚜렷한 경향이 나타났다. 거의 5000개에 달하는 그림 중 여성 과학자를 그린 것은 단 28개 뿐이었다. 0.6%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28개 그림도 전부 여자아이들이 그린 것이고, 남자아이들이 그린 여성과학자 그림은 한 장도 없었다.

데이비드 밀러가 이 결과를 다른 연구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지금은 얼마나 변했을까 물었지만, 대부분은 지금도 별로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밀러와 동료들이 50여 년에 걸쳐 약 2만 명 이상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78개의 ‘과학자를 그리다’ 연구 결과를 모아서 분석했더니 매우 큰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챔버스의 첫 번째 연구에서는 겨우 0.6%만이 여성 과학자를 그렸지만, 지금은 28%의 어린이들이 여성과학자를 그린 것이다.

이는 여성들이 과학계에 진출하는 비율이 높아진 것과도 관계가 깊다. 1960년대 이후 여성 과학자들은 미국에서 크게 늘었다. 2015년 화학 분야에서 학위를 받는 여성들의 비율은 무려 48%를 차지했는데 이는 1966년의 19%에서 크게 늘어난 것이다.

아직은 남성 과학자에 비해서 교과서나 잡지 또는 텔레비전 쇼에 적게 나오지만, 어린아이들의 과학에 대한 고정관념은 크게 변하는 것이다.

어린이가 그린 과학자 ⓒ Draw-a-Scientist study
어린이가 그린 과학자 ⓒ Draw-a-Scientist study

 

그런데 그 후 1985년부터 2016년 사이에 진행된 ‘과학자를 그리다’ 실험에서는 여성 과학자를 그린 비율이  엄청나게 뛴 것이다. 여자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남자 아이들도 과학자 하면 여성을 떠올렸다. 물론 여자 아이들이 여성 과학자를 그린 비율이 높기는 하다.

이번 연구의 공저자인 노스웨스턴 와인버그 예술및과학대학(Weinberg College of Arts and Sciences)의 앨리스 이글리(Alice Eagly) 심리학교수는 “어린이들은 아직도 과학자 하면 남자를 더 많이 그리지만, 여성들이 몇몇 과학분야에서는 아직 소수로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어린이들이 발달시기에 과학자에 대한 고정관점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보여줬다. 어린이들이 과학을 처음부터 남자와 연결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로 올라가면서 남성과학자를 그리는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학년이 높은 아이일수록 과학자를 실험복을 입고 안경을 낀 것으로 그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아이들이 고정관념에 빠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여준다.

초창기 챔버스의 연구를 빼고 난 다음에 진행된 연구에서 여자아이들은 과학자의 45%를 여성과학자로 그렸지만, 남자아이들은 겨우 5%뿐이었다.

40여년전 학생들이 그린 과학자 모습 ⓒ DAST
40여년전 학생들이 그린 과학자 모습 ⓒ DAST

그러나 여자이이들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과학자를 점점 더 남성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6세 때 여자아이들의 70%는 과학자를 여성으로 그렸지만, 10세에서 11세로 올라가면서 꺾이기 시작해서 결국 16세가 돼서는 여학생들도 75%가 과학자를 남성으로 그렸다.

학년 올라가면서 고정관념 강해져

이번 연구의 공저자인 데이비드 우탈(David Uttal)은 “교사와 학부모는 과학공부나 텔레비전 쇼 그리고 비공식적인 대화에서 여성 및 남성과학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28%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과의 불일치는 여전하다. 화학과 생물학에서 여성과학자 비율은 크게 늘었지만, 아직도 컴퓨터 과학이나 공학 또는 물리학에서 여성 비율은 20% 이상 적다. ‘컴퓨터과학자나 물리학자를 그려보라’는 실험을 하면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진다.

젠더 문제 못지 않게 인종에 대한 의견도 제시된다. ‘과학자를 그리다’ 연구에서 약 79%의 학생들은 과학자를 백인으로 그렸다. 이것은 과학계 분야에서 유색인종이 적은 것이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데이비드 밀러는 “이 결과는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이 유색인인지 아닌지 불분명할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어떤 색깔의 물감이나 크레용이 지급됐는지 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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