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평 / 나무의 노래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사람들은 나무가 웃는 소리를 듣는다. 나뭇잎끼리 가볍게 부딪치면서 흔들리는 몸털기 동작은 어린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노는 것 같다.

물론, 나뭇잎은 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다. 나뭇잎 위쪽은 햇빛을 받아 두껍고 색깔이 짙지만, 나뭇잎 아래쪽은 옅은 색이다. 바람에 나뭇잎이 이리저리 뒤집히면 짙은 색깔과 옅은 색깔이 교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마치 사람들을 향해 반갑다고 손을 흔드는 환영인사 같다.

나무는 알까? 봄바람에 살랑대는 그 모습이 사람들에게 감동과 즐거움과 살아있음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몸짓이 자신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음을.

대체로 나무에 대해 이런 정도의 감성은 많이 느꼈을 것이다. 생물학자이며 미국 시워니 대학 생물학교 교수인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David George Haskell) 박사는 시인의 서정에 과학자의 탐구심을 융합시켰다.

그가 쓴 ‘나무의 노래’(The Songs of Trees)는 비평가들이 그를 자연문학 작가이면서, 나무를 생물학적으로 탐구한 과학자로 부르는 이유를 알게 한다.

데이비드 헤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값 20,000원
데이비드 헤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값 20,000원

식물도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건강하게 잘 자란다. 어린 나무가 인간의 사회망에 섞여들면 생존율이 커진다. 이웃 주민이 심은 나무는 익명의 식목업자가 심은 나무보다 오래산다. 등산길이나 길가에 있는 나무 중 어떤 나무에는 이름표가 달려있다.

이름표와 함께 때때로 물주기, 바닥덮기, 흙 갈아주기, 낙엽치우기 같은 할 일이 적혀있으면 생존 확률이 100% 가까이 급증한다고 저자는 알려준다.

12그루의 보통 나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해스컬 박사는 12개 나무를 골라 깊은 애정과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설명한다. 이 12그루가 주변의 환경과 인간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12그루의 나무는 유명하거나 화려하거나 그런 나무가 아니다.

작가가 나무를 부르는 방법은 조금 독특하다. 누구나 찾아갈 수 있도록 매우 정확한 위도와 경도를 표시한다.

덴버 도심 개울가에 있는 어린 미루나무, 높이가 성인 남자의 가슴밖에 안되는 이 나무의 정체성은 콜로라도 덴버 39°45′16.6″N, 105°00′28.8″W로 표시된다. 그리고 구글검색창에 이 숫자를 넣으면, ‘나무의 노래’ 책에 나온 것처럼 덴버시 사우스 플래트 강 변 다리 밑의 컨플루언스 파크(Confluence Park)의 작게 굽은 길이 표시된다.

이 공원 이름이 컨플루언스인 것은 분명 이 지점에서 강 지류가 합쳐지는 양수리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도심지에 사는 콩배나무의 정체성은 뉴욕 맨해튼 40°47′18.6″N, 73°58′35.7″W이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86번가 (W 86th st)가 만나는 구석 인도에 자리잡은 나무이다.

허드슨 강과 맨해튼 파크의 가운데쯤 된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고, 번잡하고 그리고 지하로 지하철이 지나가는 그런 도심 한가운데이다.

해스컬 박사는 이 콩배나무에 청진기를 댄다. 왁스를 바른 센서를 콩배나무 껍질에 장착한다. 일종의 귀를 달아준 셈이다. 콩 만한 센서는 파란색 전선을 통해 책 크기의 프로세서 2개를 거쳐 노트북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저자는 헤드폰을 쓰고 나무와 인간 사아의 음향통로를 뚫어놓고 ‘나무의 노래’를 듣는다.

이 신기한 모습은 과학자 겸 시인과 나무만 연결하는 것이 아니다. 음모론을 좋아하는 말많은 남자도, 시가를 피우며 기침하는 여자도, 노점상인도 그리고 지나가는 보행자도 연결시켜 준다. 나무 수종을 묻는 요식절차를 지나면, 이들은 낯선 과학자에게 마음속 답답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하고, 나무에 청진기를 댄 이유도 묻는다.

브로드웨이를 지나는 승용차와 훨씬 무거운 트럭의 움직임은 나무에 영향을 미쳐서 맨해튼 콩배나무는 시골나무 보다 더 단단하게 땅을 움켜쥐고, 둘레도 더 강하게 두꺼워진다.

도시 나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소음과 전자파와 배기가스와 무선신호와 진동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사람들이 나무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나무에 대한 저자의 관심과 애정은 사방으로 뻗어있다. 뉴욕시는 나뭇가지 치는 예산을 줄였지만, 아무렇게 뻗은 나뭇가지에 다친 사람들이 제기한 소송으로 훨씬 더 많은 돈을 지출했다가 결국 원상회복했다.

도시 나무는 생태계에 다른 방식으로 기여한다. 사람들을 밀집시키면서, 공해요인도 밀집시켜 놓았기 때문에 시골 환경과 시골 나무를 간접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맨해튼 브로드웨이의 가로수 ⓒ Pixabay
맨해튼 브로드웨이의 가로수 ⓒ Pixabay

나무는 알까 모르지만, 나무는 서 있는 것 자체로 사회적인 존재이다. 나무 밑 기온은 27℃이지만, 땡볕 온도는 36℃이다. 사람이 나무 아래 서 있으면, 보행자들은 자연스럽게 피해가면서 사람에게 아무 책임도 요구하지 않지만, 그냥 인도에 서 있으면 사람의 흐름을 방해할 뿐 더러, 보행자들의 눈총에 시달려야 한다.

사람들은 나무를 하나의 독립적인 사회문화적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중에는 분명히 12개 나무의 위도와 경도를 검색해서 정확한 지점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이같은 방식으로 12그루의 나무와 연결되고 소통된 셈이다.

아마도 이 12그루는 다른 어떤 나무보다 사람의 관심과 애정을 받았으니 훨씬 건강하고 장수할 것 같다. 미국 뉴욕독자라면, 덴버 독자라면 금방 알 수 있는 그런 지점에 미루나무와 콩배나무가 서 있다.

사람과 나무를 이어주는 이 새로운 방법이 활성화되면, 머지않아 ‘책에 나온 나무’ 라는 명찰을 달고 유명세를 탈 나무도 나올 것 같다.

<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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